최근에 애플 TV에서 방영하기 시작한 드라마파친코 대해 New York Times 같은 유명 매체들이 연일 호평하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자의 타의 반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던 재일교포들의 처절했지만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라고 합니다. 어떤 이에게 삶은 유난히 혹독합니다만 그런 중에도 아름다운 삶을 살아내는 사람도 있는 겁니다. 우리도 자신의 삶이 비록 고달플지라도 아름답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처절했지만 아름다웠던 삶의 이야기를 하나 전해드리려 합니다.

화가 조반니 세간티니(Giovanni Segantini·1858~1899) 이탈리아 북부 아르코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날 즈음 그의 형이 불에 죽고, 이에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극심한 우울증으로 아이를 돌보지 않았다. 일곱 어머니가 세상 떠나고, 아버지는 아이를 밀라노의 이복 누나에게 맡기고 사라졌다. 누나도 그를 양육하지 않았고, 호적 신고조차 하지 않아 그는 무국적자가 되었다. 어머니, 아버지, 누나에게 버림받고 초등학교도 가지 못한 그는 집을 나와 밑바닥을 전전했다.

그는 글은 배웠지만, 그림에는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고, 밀라노의 명문 브레라 미술학교에 입학했다. 누구에게도 배우지 않은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는 학교에서 밀라노 명문가의 아들인 카를로 부가티와 친구가 되었고, 카를로의 여동생인 비체와 사귀게 되었다. 조반니는 비체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둘만의 결혼식을 올렸는데, 그에게는 호적도 국적도 없어서 그들은 법적으로 부부가 아니었다.

그는 비체와 함께 알프스의 산속 마을로 들어가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둘이 부부가 아니라는 소문에 마을 주민들은 그들을 냉대했고, 둘은 점점 알프스 고지대로 숨어들어 갔다.

조반니와 비체는 아이를 낳았고, 여섯 식구는 찢어지게 가난했어도 함께했다. 낮에는 조반니가 알프스의 풍경을 그렸고, 저녁이면 비체는 그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이태리어, 프랑스어, 독어와 영어도 잘했던 비체는 밤마다 조반니에게 위고, 괴테, 니체, 그리고 밀레의 전기를 읽어주었다.

그는 비체에게 배운 글로 그녀에게 편지를 남긴다.

봄이 때마다 알프스에 제비꽃을 당신에게 바칠 거요. 당신이 꽃을 받지 못하는 봄이 온다면, 그건 내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요 …”

그는 스승도 동료도 비평가도 없이 혼자서 자신의 미술을 하다가 1895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이탈리아 국가상을 받게 되고, 1900년에 열릴 파리 세계박람회에 출품 요청을 받았다. 그리고 세계박람회에 보낼 그림을 그리던 어느 저녁, 급성복막염으로 쓰러져 의사도 없는 산속에서 비체의 품에 안겨 41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죽은 후에야 19세기 가장 위대한 화가의 명으로 인정받았다.

그가 죽은 비체는 그를 뒤따라갈 때까지 35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의 무덤에 들꽃을 꽂았다. (이상 조선일보에서 발췌했습니다.)

조반니 세간티니는 혹독한 자연보다도 잔인한 사람들에게 버림받는 처절함 중에도 삶의 아름다움을 그렸습니다. 자기를 끝까지 버리지 않은 사람, 아름다운 사람과 함께하는 말입니다.

당신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같이 있는 당신을 상상해 보세요. 당신 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삶이 보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