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폴 세잔(Paul Cézanne·1839~1906)의 아버지 루이 오귀스트 세잔은 남프랑스의 은행 창업주인 부자였습니다. 그는 외아들 폴이 가업을 잇기를 바라며 법대에 보냈는데, 폴은 법대에 입학하고는 수업은 미대에서 듣더니, 친구 에밀 졸라를 따라 파리로 가서 화가가 됐습니다.
게다가 무위도식하면서 매달 돈을 받아 쓰는데 동거녀와 몰래 자식까지 낳자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결국은 생활비를 두둑하게 올려주고 맙니다. 자식이 뭔지 …
폴 세잔은 돈 걱정 없이 그림만 그렸는데, 온통 어두운 물감을 나이프로 두껍게 발라 거칠고 투박한 그의 그림은 영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처음으로 그의 그림이 내 걸린 건 낙선전(落選展)이었는데, 거긴 화가들의 등용문이던 파리 살롱에서 탈락한 작품만 모아 선보였던 전시회였습니다.
매년 줄기차게 탈락만 하던 폴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심사를 통과해 파리 살롱에 전시했던 그림은 자기 아버지를 그린 초상화였습니다. 아버지가 의자에 어정쩡하게 앉아 ‘레벤망(L’Événement)’이란 신문을 읽고 있는 그림입니다. 레벤망은 폴의 아버지가 아주 싫어하는 에밀 졸라의 소설을 연재하던 신문입니다. 그 많은 신문 중에 하필이면 레벤망을 읽고 있는 아버지로 그리다니 ...
(위 이야기는 조선일보에 연재되는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에서 발췌했습니다.)
성경에도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자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작은아들이 자기 몫의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합니다. 아버지 입장에서 이건 정말 황당한 겁니다. 아버지가 정정한데, 재산의 1/3에 해당하는 큰돈을 내놓으라니 말입니다. 여기 ‘재산’이란 단어에는 ‘생명’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불손한 아들에게 생명 같은 재산을 떼 줍니다.
아들은 큰돈이 생기자 자유로운 인생을 살려고 미련 없이 아버지의 집을 떠납니다. 그런데 돈 많은 젊은이에게 세상 유혹은 너무 큽니다. 그는 몸과 마음이 가는대로 돈을 썼고, 가진 돈을 모두 탕진합니다. 거지가 되니까 아무도 반기지 않습니다. 이제 먹고 살려면 무슨 일이든 해야 합니다. 그래서 돼지 치는 일을 하게 되는데, 그에게 돼지는 종교적으로 피해야 하는 짐승입니다. 그는 너무 배고파서 돼지밥이라도 먹어야 할 지경이 된 겁니다. 그제서야 그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제서야 그는 아버지의 집을 나온 게 잘못이라고 인정합니다. 그제서야 그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죽을 고생하고 있는 거 다 압니다. 부자인 아버지는 오가는 상인들에게 아들 소식을 다 듣고 있지만 고생하는 아들을 억지로 데려오진 않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언젠가는 돌아올 아들을 맞기 위해서 매일 옥상에 올라가서 동네로 들어오는 길을 바라봅니다. 아버지는 돌아오는 아들을 보자마자 한달음에 달려가서 얼싸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버지에게 할 변명을 외우고 또 외웁니다. '아버지,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전 아들도 아닙니다. 저를 하인으로 여겨주세요.' 아들은 아버지의 품에 안기자 감정이 복받칩니다. 흐느끼면서 수없이 반복하며 외웠던 말을 떠듬거립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미 아들을 용서했습니다. '얘야, 아무 말 안 해도 된다. 내가 니 맘 다 안다.'
아버지는 잔치를 준비하라고 하인들에게 지시합니다. 아버지는 제일 좋은 옷을 그에게 입히고 성대한 축하 잔치를 엽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배신하고, 아버지 얼굴에 똥칠하고, 재산의 1/3을 탕진한 아들인데, 아버지의 사랑이 덮지 못할 죄는 없는 겁니다. 아들이 자기가 변했다는 걸 보여주기도 전에, 심지어는 잘못했다는 말도 하기도 전에 아버지는 아들을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은 돌아오는 우리를 자식으로 받아주십니다. 기다리시고, 잘못을 묻지 않으시고, 용서하시고, 말입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여 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십니까?” (시편 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