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창궐이 제 샤워 습관을 바꿨습니다. 제 피부는 지성인데, 특히 두피가 그렇습니다. 좋은 점은 스킨 로션을 안 발라도 된다는 겁니다. 20대 초반일 때 잘 생긴 얼굴 더 잘 보이려고 몇 번 발라 본 게 전붑니다. 단점은 햇볕을 조금만 쐬도 얼굴이 땡볕에서 축구했거나 바다에 갔다 온 것처럼 탑니다. 또 다른 단점은 매일 아침 머리 감을 때 비누칠을 두 번 하는 겁니다. 샴푸도 아이보리도 안되고 다이알만 써야 합니다. 그런데 코로나19 때문에 비누칠을 한 번 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껍질이 지방질이라 비누로 20초 이상 씻으면 녹는다기에 손 씻을 때마다 ‘해피 버스데이 투유’를 두 번씩 부르다가 감잡힌 겁니다. 비누로 두 번 후딱 감을 때보다 지금이 상태가 더 좋습니다. 전에는 밤이 되면 머리카락에 기름기가 돌고, 콧잔등에, 코 옆에, 귀 뒤에, 땀샘인지 지방샘인지를 가끔 짜내야 했습니다. 그게 없어졌습니다. 비누 덜 쓰고 물 덜 쓰니 지구에도 좋고, 쬐끔이지만 절약도 됩니다. 아내에게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더니 ‘사람이 다 당신처럼 지성 피분 줄 아나봐. 건성 피부 사람은 그럴 필요 없어. 그리고 여자는 머리에 샴푸하고 이것 저것 다 한 담에 헹궈. 그거 다 알고 있는 거야.’ 라는 핀잔만 들었습니다. 하여튼, 비누가 지방을 녹인다는 건 전에도 알긴 했지만, 제 머리 감는 습관은 코로나19으로 인해 바뀐 겁니다.
사람이 비상사태를 만나면 그동안 눈여겨보지 않던 것이 갑자기 떠오르는 걸 경험합니다. 이것을 창발(emergence)이라고 합니다. 비상사태를 당하면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무능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인지를 뼈저리게 실감하며 혼란스러워집니다. 그 혼돈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육체적, 정신적, 영적 자원을 남김없이 쏟아붓습니다. 그리고 창발이 일어납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강력한 전염병을 갑자기 만났고, 가게는 문을 닫고, 사무실에도 못 가고, 식당이고 교회고 결혼식이고 장례식이고 모이지 못하게 되고, 집에만 있게 되자 디지털 세계가 창발하고, 안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창발했습니다. 창발한 현상들은 코로나19 창궐 이후의 달라진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확산할 겁니다.
위기는 위험과 기회를 합친 단어 아닙니까. 코로나19으로 인해 달라진 세상은 삶의 새 판을 깔 수 있는 기회입니다. 사람은 대개 이미 깔려있는 판에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사는게 재미가 없습니다. 삶이 고단한 거야 누구나 그러니 어쩔 수 없습니다만, 사는 게 재미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가 의지하던 안전망이 실제로는 안전하지 않다고 드러났습니다. 당신이 의지하던 안전망도 안전하지 않다는 신호가 그동안 강하진 않았지만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당신은 그 신호를 애써 외면했겠고요. 새 판을 깔기 위해서 그 신호를 잡아야 하는데, 당신에게 깊은 관심이 있는 하나님이 그 신호를 보내신다는 생각을 해보셨는지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으면 성경을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더욱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해 왔다.” (요한복음 10장 10절)